이예춘, 허장강과 함께 한국영화의 대표적 성격파 배우 중 한명으로 17세 때 악극단에 입단해 연기 활동을 시작하여, 조선 팔도는 물론이고, 만주까지 오가며 많은 인기를 누린다. 한극 전쟁을 거치며 흥행업의 중심이 악극에서 영화로 옮겨감에 따라, 최봉 역시 영화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와 이강천 감독의 <격퇴>(1956)로 처음 영화 연기를 경험하게 된다. 권투에도 능하여, 한국 최초의 권투 영화인 1959년 <피묻은 대결>을 작업할 때는 촬영 전 주요 배역들을 오랜 기간 트레이닝 시키고, 또 권투 장면 촬영 당시에는 장충단의 육군 체육관을 닷새 동안 빌려 촬영하기도 했다고 한다(월간 조선). 1970년대 즈음 많은 배우들이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작업하게 되는데, 최봉 역시 박노식, 박암과 함께 1969년 TBC의 반공 드라마 <지령3호>에 출연한다. 이후 1984년에는 MBC의 주말연속극 <아머지와 아들>을 통해 영화에서 오랜 기간 동안 굳어졌던 악역의 이미지를 씻어내고(경향신문a), 1985년 MBC 방송연기 대상 특별상을 타기도 한다. 당시 유명 드라마 작가인 김기팔과 여러 작품을 같이 했는데(경향신문c). 특히 1987년작 <욕망의 문>에서는 '에이 좁쌀같은 인간아'라는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경향신문b). - KMDB(http://kmdb.or.kr)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