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일본군은 부탄의 카이성을 점령하고 독가스 공장을 세울 계획을 세운다. 곽명명은 중국군으로부터 일본군의 기밀을 알고 있는 카이성의 성주 우달을 데려올 것을 요청받는다. 카이성에 도착한 곽명명은 중국의 첩자인 천자1호와 함께 우달을 빼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타고 갈 비행기의 연료가 없어서 일본군 보급창고에서 기름을 가져오기로 한다. 그러나 이미 올 것을 알고 기다리던 일본군에 의해 붙잡히고 처형 당할 위기에 몰린다. 그 때 카이성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일본군을 내쫓고 곽명명과 천자1호, 우달 등은 살아난다. 도망친 일본군은 다시 부대를 이끌고 카이성을 공격하고 우달과 곽명명, 천자1호 등은 성 주민들과 함께 일본군과 맞서 싸운다.
● 서기(舒琪) : '중화전사'(1987)는 양자경을 위해 특별히 기획된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야심에 차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영화는 공군을 다루는 작품이었는데, 당시 홍콩에는 촬영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습니다.
● 잠건훈(岑建勳) : 그래서 (대만) 화롄으로 갔습니다. 어쩔 수 없었죠. 도시를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설정상으로는 부탄과 네팔 사이 어딘가에 있는 아주 작은 곳이었고, 머릿속에서는 사실상 ‘부탄’으로 생각했습니다.
● 증근창(曾謹昌) : 화롄에 세 달 넘게 머물렀습니다. 사전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네 달이었죠. 덕보(德寶)는 항상 그랬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덕보는 매 작품마다 일정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정말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시퀀스(分場)를 뽑자마자 서둘러 첫 원고가 나오면 거의 크랭크 인입니다. 장소를 찾는 등 촬영을 시작합니다. 두번째 원고를 쓸 기회는 전혀 없습니다. 현장에서 장면마다 수정해 나가는 식이었죠. 그래서 그 시절에 사람들은 저를 ‘패스트 건'(快槍手)이라고 불렀습니다. '황가사저'(皇家師姐)도 그랬고, '중화전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중에는 항상 3개 촬영팀이었습니다. 늘 그랬죠.
● 진교영 (陳翹英) : 낮에는 제가 증근창과 함께 호텔에 있으면서 다음 날 찍을 내용을 구상했습니다. 현장에는 잠 선생(잠건훈)이 총감독으로 있고, 그 외에도 네다섯 명의 유명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동승(爾冬陞), 동위(董瑋), 진흔건(陳欣健) 등입니다. 항상 누군가가 촬영을 하고 있었고, 저는 작가팀과 함께 호텔에서 대본을 구상했고, 그들이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잠 선생이 다음 날 찍을 내용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정말 철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철인이었어요. 대본 회의를 끝내면 새벽 두 시였고, 다음 날 아침 여섯 시에 다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계속 그런 식이었습니다.
● 잠건훈(岑建勳) : 찍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여러 팀으로 나눠 촬영해야 했습니다. 감독은 종지문이었고, 두기봉도 큰 도움을 주며 한 팀을 맡았고, 이동승도 한 팀, 저도 한 팀을 맡았습니다. 원래 이동승이 맡았던 배역은 주윤발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천적동화'(秋天的童話,1987)를 찍어야 해서 제가 그를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오래 고민했습니다. “'추천적동화'에는 반드시 발이가 필요하다. '중화전사'는 발이가 아니어도 된다.” 그래서 소보(小寶, 이동승)로 대체했습니다.
● 오요한(吳耀漢) : '중화전사'와 관련해 제가 존(잠건훈)에게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납니다. “우리는 대만에서 찍지 말자.” 비싼 문제만이 아니라 그쪽 사람들은 처음엔 된다고 해놓고 막상 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하는 방식이 홍콩과는 너무 달랐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실 잠건훈은 잘못이 없습니다. 촬영지를 그쪽으로 정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온갖 약속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촬영은 끝내야 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 잠건훈(岑建勳) : 네. 마지막에는 그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결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요. "큰일 났다, 마지막에 일본군 대군이 밀려오는데 이걸 어떻게 찍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예산은 이미 다 써버렸고 둘째, 러닝 타임도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불태우자”라고 했죠. 일본군이 오는데, 목숨 걸고 싸우라고요? 싸우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멀리서 그저 바라볼 뿐이죠. “아… 이 도시, 이렇게 파괴되는구나…”
● 증근창(曾謹昌) : 하지만 그때 정말 가장 아쉬웠던 점은 '중화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즉 도시를 불태우는 장면을 찍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첫째, 이건 정말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불을 지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적합한 목재를 골라야 하고, 연기가 엄청나게 납니다. 다 타버렸지만 화면에는 연기뿐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도시 전체가 검은 연기에 뒤덮여 있었죠. 그래서 극히 일부 컷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면이 온통 연기와 암흑뿐이었거든요. 그게 가장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 곡미려 (谷薇麗) : '중화전사'는 돈을 많이 썼지만 흥행은 평범했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사실상 ‘워털루’, 즉 참패에 가까웠습니다.
● 잠건훈(岑建勳) :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국제시장'(賣埠), 즉 해외 배급이 필요했고, 대만이나 다른 지역에서의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대작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룹 전체 차원에서 계산해 보면, 극장 수익은 상당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