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35년 11월 19일 중국 상해 출생. 그의 아버지는 상해 대중화(大中華) 영화사의 녹음 기사였다. 1949년 홍콩으로 이주하여 남국(南國) 촬영소에서 나군웅(羅君雄)의 촬영 보조로 일했으며, 이후 녹음 보조도 맡았다. 1956년 신화(新華) 영화사에서 제작한 '채서과적고낭'(採西瓜的姑娘) 을 통해 처음으로 촬영감독으로 승진했으며, 이후 신화 영화사의 전속 촬영감독으로 활동했다. 또한 신화 영화사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컬러 촬영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1964년 쇼브라더스(邵氏)로 이적한 후 '혈천목단홍'(血濺牡丹紅, 1964), '호접배'(蝴蝶盃, 1965) 등의 촬영을 맡았으며, 호접배에서는 조감독 역할도 수행했다. 1965년 정식으로 감독으로 데뷔하여 첫 작품 '강호기협'(江湖奇俠, 1965)을 연출했고, 이후 이 영화의 연작인 '원앙검협'(鴛鴦劍俠, 1965)과 '금검은수'(琴劍恩仇, 1967)를 감독했다. 특히 강호기협은 쇼브라더스의 '컬러 무협 신공세'(彩色武俠新攻勢)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그 후 쇼브라더스에서 '신검진강호'(神劍震江湖, 1967), '십이금전표'(十二金錢鏢, 1969), '대라검협'(大羅劍俠, 1970), 고룡(古龍)이 각본을 쓴 '소십일랑'(蕭十一郎, 1971) 등의 무협 영화를 연출하며 쇼브라더스의 대표적인 무협 감독이 되었다. 1971년 쇼브라더스를 떠나 추문회(鄒文懷)가 설립한 가화(嘉禾) 영화사에 합류하였으며, 일본 감독 야스다 기미요시(安田公義)와 공동 연출한 '독비도대전맹협'(獨臂刀大戰盲俠, 1971)을 감독했다. 그러나 '독비도'(獨臂刀)는 쇼브라더스 영화의 캐릭터였기에 저작권 소송이 발생했고, 결국 쇼브라더스가 승소하여 해당 영화는 홍콩에서 더 이상 배급될 수 없었다. 같은 해, 가화의 지원을 받아 대만에서 고간(苦幹) 영화사를 설립하고, 왕우(王羽) 주연의 '협의쌍웅'(俠義雙雄, 1971)과 '일부당관'(一夫當關, 1971)을 감독했다. 이후 대만에 정착하여 자체적으로 제작하거나 다양한 영화사와 협력하여 '조주권왕'(潮州拳王, 1973),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 1976), '검상인'(劍霜刃, 1977) 등의 무협 영화를 연출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연출한 영화는 왕우 주연의 '독비권왕용전초문구자'(獨臂拳王勇戰楚門九子, 1979)로, 왕우의 유명한 '독비권왕' 캐릭터가 고룡 소설 속 유명한 아홉 캐릭터를 상대하는 독특한 설정을 갖춘 작품이었다. 1980년 홍콩으로 돌아와 가화와 관계가 깊은 천공(天工) 현상소에서 매니저로 근무했으며, 1986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1시간 사진 인화점을 운영하다가 1988년 홍콩으로 귀국했다. 이후 대만으로 이주하여 생활했다. - 향항전영도연대전(香港電影導演大全)에서 발췌 및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