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9년 중국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에서 태어났다. 항주시립중학(杭州市立中學)을 거쳐 난징 중앙군관학교(南京中央軍官學校) 보병과 제11기를 졸업했다. 1949년 홍콩으로 이주하였으며, 1952년 영화계에 입문하여 배우로 활동하며 영화 '구흉수'(狗兇手, 1952)에 출연했다. 1957년부터 감독 엄준(嚴俊)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그의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대표작으로는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유룡희봉'(遊龍戲鳳), '용봉배'(龍鳳配) 등이 있다. 또한 하몽화(何夢華) 감독의 '인약황혼후'(人約黃昏後, 1958)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1959년, 엄준이 국태(國泰)에서 연출한 '풍우귀주'(風雨歸舟)에서 각본 및 조감독을 담당했다. 1967년에는 엄준을 따라 소씨형제회사(邵氏兄弟公司)에 합류하여, 그의 연출작인 '몽면대협'(幪面大俠, 1967), '연쇄'(連瑣, 1967), '한연취'(寒煙翠, 1968), '옥면협'(玉面俠, 1971)에서 조감독 또는 각본가로 활동했다. 또한 도진(陶秦) 감독의 '혈흔경'(血痕鏡, 1967), 악풍(岳楓) 감독의 '금의대협'(金衣大俠, 1970) 등 다른 작품들의 각본도 맡았다. 추문회(鄒文懷)의 발탁으로 소씨에서 감독으로 승진하여, 첫 연출작인 무협 영화 '혈부문'(血符門), 1970)을 감독했다. 1971년, 추문회와 함께 소씨를 떠나 가화(嘉禾) 설립을 도왔으며, 가화 초기 작품 중 하나인 '귀노천'(鬼怒川, 1971)을 연출했다. 이 작품에서 대만 경극도마단(京劇刀馬旦) 출신의 모영(茅瑛)을 발굴하여 무술 여배우로 데뷔시켰다. 이후, 가화에서 이소룡(李小龍) 주연의 '당산대형'(唐山大兄, 1971)이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고전 무협 영화에서 본격적인 쿵푸 영화로 전향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합기도'(合氣道, 1972), '태권진구주'(跆拳震九州, 1973), '중태권단생사전'(中泰拳壇生死戰, 1974), '밀종성수'(密宗聖手, 1976), '사대문파'(四大門派, 1977) 등이 있으며, 가화 초기 주요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는 모영 외에도 무술 감독 홍금보(洪金寶)를 키웠으며, 또 다른 무술 스타 황가달(黃家達)을 발굴했다. 1978년, 직접 가부영화사(嘉富電影有限公司)를 설립하고, 본인이 감독한 무협 영화 '낭자일초'(浪子一招, 1978)를 제작했다. 1979년에는 새로운 영화사 가풍영화사(嘉豐電影公司)를 세워, 홍금보가 감독한 '신불유기'(身不由己, 1980)를 제작했다. 하지만 해당 영화가 개봉될 당시, 그는 영화계를 떠날 것을 선언했다. - 향항전영도연대전(香港電影導演大全)에서 발췌 및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