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52년 2월 5일 홍콩 출생. 영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홍콩으로 돌아와 광고회사에 근무했다. 이후 옮긴 금융회사가 사업을 확장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1980년, 그는 여윤항(余允抗)과 함께 세기영화사(世紀影業公司) 및 오주세기영화사(五洲世紀影業公司)를 설립하여, 장국명(章國明)의 '변연인'(邊緣人), 여윤항 감독의 '흉방'(凶榜) 등 홍콩 뉴웨이브 시기의 대표작들을 제작했다. 이는 당시 홍콩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오주세기는 폐업했다. 이후 1987년 유진위와 왕가위(王家衛)는 등광영(鄧光榮)의 영지걸영화사(影之傑製作有限公司)에 합류했으며, 두 사람은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하고 유진위가 감독을 맡은 '맹귀차관'(猛鬼差館)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기존의 ‘강시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맹귀(귀신)’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맹귀’ 시리즈의 성공으로 유진위는 다수의 엽기적이고 코믹한 영화들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 오사원(吳思遠)의 제안으로 유진위는 원규(元奎)와 함께 '도성'(賭聖)의 기획에 참여했고, 이 작품은 주성치(周星馳)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주며 당시 홍콩 영화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1992년에는 ‘기안'(技安)이라는 필명으로 '92흑매괴대흑매괴'(92黑玫瑰對黑玫瑰)의 각본을 집필해, 복고풍 노래 코미디 붐을 일으켰다. 같은 해 그는 왕가위와 함께 '택동영화사'(澤東電影公司)를 설립하고, '사조영웅전지 동성서취'(射鵰英雄傳之東成西就,1993)를 연출했으며 '중경삼림'(重慶森林,1994) 등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1995년에는 다시 주성치와 손잡고 '서유기 제101회지 월광보합'(西遊記第壹百零壹回之月光寶盒)과 '서유기 대결국지 선리기연'(西遊記大結局之仙履奇緣)을 공동으로 집필·감독하여, 1996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홍콩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는 최우수 남우주연상(주성치)과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1997년, 유진위는 오랜 동료 원규와 함께 영예창고(影藝創庫)를 설립했으나,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흥행과 평단 양쪽 모두에서 부진했다. 이후 그는 비밀리에 '초시공요애'(超時空要愛,1998)를 제작한 뒤 약 5년간 홍콩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2001년 중반, 두기봉(杜琪峯)과 왕가위의 초청으로 다시 영화계에 복귀해 '무한부활'(無限復活,2002)과 '천하무쌍'(天下無雙,2002)을 연출했고, 주성치의 '공부'(功夫)에서는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대표작 '서유기'의 콘셉트를 발전시켜 '정전대성'(情癲大聖,2005)과 '월광보합'(越光寶盒,2010)을 만들었으며, '사조영웅전지 동성서취'의 속편 격인 '동성서취 2011'(東成西就2011)도 제작했다. 유진위는 영화계의 장난꾸러기 천재라 불리며, 각본·연출·연기·기획·제작을 두루 소화하는 전방위 영화인이다. 그는 풍자와 해체의 유머가 넘치는 코미디를 즐겨 다루며, 특히 시간여행(시공간 전환)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 향항전영도연대전(香港電影導演大全)에서 발췌 및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