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문 (權永文)
AKA: Gwon Yeong-mun, Kwan Yung-Moon
권영문 (權永文)1944년 7월 26일 일본 출생. 광복 후 경주로 이주. 6살 때 당수도에 입문하였고 당시 경주에서 촬영한 <논개>, <화랑도> 등의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하였다. 태권도 특기생으로 동아대 체육학과 입학. 한국전쟁 후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하였고 대학시절에는 청도관 및 경찰 사범을 지냈고 1965년 제46회 전국체전에서 고기일반부 팬텀급(58~62kg)급에서 우승하였다. 군 시절에는 태권도 교관을 지냈고 화천에서 청도관 사범을 지냈다. 제대 후 춘천에서 '대한호신무도'를 창시하였고 1969년 상경하여 남대문 국민학교와 미동국민학교 시범단을 지도하였다. 당시 순금 한 냥의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국기원 개관 시 어린이, 성인, 여성 시범의 지도사범을 맡았고 세계태권도대회, 아시아태권도대회 국제심판을 맡았다.
영화계 정식 데뷔는 남대문국민학교 시절인 1970년 한진흥업에서 제작한 합작영화 <정도>이며 동시에 촬영된 <협기(전북국)>에서 무술감독을 맡는다. <정도>는 한국 측 배우로 방수일이 출연했고 홍콩 측에서 백표, 진홍열(첸훙레) 출연했다. 이들은 합작영화 외에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어서 갔다 한다. 그후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에서 무술지도를 맡았고 <돌아온 외다리> 이후 무술감독 및 악역으로 출연하였다. 한용철(챠리쉘)의 데뷔는 한용철이 디트로이트에서 살며 미국 태권도 대표선수로 입국하자 그가 주선하여 합동영화사에서 데뷔하게 되었다고 한다. .<파라문>에서는 프랑스에서 사범을 하던 이관영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였다. 이후 홍지운 작가가 쓴 <죽음의 승부>에 바비김과 황정리와 출연하였는데 이 영화가 당시 흥행에 성공하였고 <대적수>와 <귀문의 왼발잽이> 두 편을 영월에서 동시에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후 <대련의 해당화>, 이혁수 감독의 <천하의 여권>에 임은주와 함께 출연하였다. 1976년 황풍 감독작이며 홍금보가 출연한 홍콩과의 합작영화 <사대문파>에 출연을 하였다. 그리고 남미의 콜롬비아로 가서 1년간 태권도 사범을 하며 영화활동 공백기를 갖는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을 때는 성룡 전성기로 <용소야>를 촬영 중이라고 했다. 그는 다짜고짜 골든하베스트 사장인 레이몬드 초우를 만나 이력서와 영화 출연사진을 주어 다음날 바로 캐스팅되어 <용소야>에 출연하게 된다. 당당한 그의 배짱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는 당장 제2의 브루스리로 알려져 나유 감독작에 출연키로 했으나 나 감독이 사망함으로 인해 계획은 무산된다. 그후 유가량 감독의 <장배>에 출연하고 황정리와 공연한 <영웅(영 히로)>는 외국인 최초로 주인공을 맡은 영화이다. 그리고 왕관총, 고비 감독의 미국, 대만, 한국의 합작영화 <황색의 피부>에 출연한다. 당시 미국의 백상기 관장이 미국 영주권 을 받아주었다. 포학례 감독의 <만인참>에 출연 후인 1983년 그는 LA에 도장을 개업하고 '세계무술영화협회'을 시작한다. - 한국공정일보(https://www.kjcnews.co.kr)에서 발췌( 아래 신문 기사 1)
▶ 신문 기사 1 : [안태근의 다큐세상] 글로벌스타 권영문
▶ 신문 기사 2 : [세상엿보기] (482) 재미 무술 고수 권영문 감독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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