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45년 9월 24일 중국 출생. 2026년 9월 2일 별세. 어릴 때부터 대성벽괘권(大聖劈掛拳)을 수련했으며, 1963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 홍콩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1967년 소방관을 그만두고 영화계에 들어가 용호무사로 활동했다. 196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자유격투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를 계기로 영화 '용목향'(龍沐香,1970), '파사참'(巴士站,1971) 등에서 무술 감독을 맡았다. 이후 장철(張徹) 감독의 추천으로 쇼브라더스(邵氏公司)와 계약을 맺고 전속 배우가 되었다. 탄탄한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장철 감독의 '마영정'(馬永貞,1972)에서 강인하고 거친 성격의 배역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쇼브라더스에 입사한 첫 5년 동안 총 22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가운데에는 장철 감독의 액션 영화 '사기사'(四騎士,1972), '방세옥여홍희관'(方世玉與洪熙官,1973), '오호장'(五虎將,1974), 유가량(劉家良) 감독의 '육아채여황비홍'(陸阿采與黃飛鴻,1976), '홍희관'(洪熙官,1977) 등이 있다. 또한 계치홍(桂治洪) 감독의 사회 사실주의 영화 '성기다루'(成記茶樓,1974)와 '대가성'(大哥成,1975)에도 출연했다. 1976년 진관태는 직접 대성영화사(大聖電影公司)를 설립해 '대몽성'(大懵成,1976)과 '철마류'(鐵馬騮,1977)를 제작하고 감독했다. 이 때문에 쇼브라더스로부터 계약 위반으로 고소를 당해 2년 동안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1978년 합의하였고, 이후 쇼브라더스로 복귀해 장철 감독의 '잔결'(殘缺,1978), 계치홍 감독의 '만인참'(萬人斬,1980)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9년에는 '상해탄대형'(上海灘大亨), 1981년에는 '위험인물'(危險人物)을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았다. 쇼브라더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뒤에는 홍콩과 대만을 오가며 활동하면서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90년에는 위개영화사(緯愷電影公司)를 설립해 초원(楚原) 감독의 '소투아성'(小偷亞星,1990)과 '혈재풍상'(血在風上,1990), 방평(方平) 감독의 '기졸'(棄卒,1990)을 제작하고 주연을 맡았다. 또한 직접 '첩혈풍운'(喋血風雲,1989)을 연출했다. 이후 영화계에서 점차 물러나 사업가로 전업했다. 2000년 영화계로 복귀하여 베이징에 정착한 후 태림 스튜디오(泰琳工作室)를 설립해 영화 및 영상 제작 사업을 하는 한편, '용호문'(龍虎門,2006), '금의위'(錦衣衛,2010), 홍콩 금상장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타뢰대(打擂台,2010) 등 여러 영화에 특별 출연하였다. 2010년에는 홍콩에 중국전통국기총회(中國傳統國技總會)를 설립하여 무술 보급에 힘썼다. - 향항전영도연대전(香港電影導演大全)에서 발췌 및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