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명은 맥가상(麥嘉尚)이며, 1944년 2월 29일 중국에서 출생. 1958년, 14세 때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중학교는 숭진영문서원(崇真英文書院)에서 다녔으며, 1963년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다시 이민을 갔다. 뉴욕 브루클린 공과대학(Polytechnic Institute of Brooklyn)에서 전자공학(BSEE)을 전공한 후, 1969년부터 현지 전화 회사에서 수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또한, 저녁에는 뉴욕 사진학원(New York Institute of Photography)에서 영화 제작을 전공했다. 1973년 홍콩으로 돌아온 후, 오요한(吳耀漢), 여응취(黎應就), 홍금보(洪金寶), 유가영(劉家榮), 석천(石天), 황백명(黃百鳴) 등 여러 젊은 영화인들과 함께 선봉영화사(先鋒電影公司), 가보영화사(嘉寶電影公司), 분투영화사(奮鬥電影公司), 신예성영화사(新藝城電影公司)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1976년, 그가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선봉영화회사 작품 '일지광곤주천애'(一枝光棍走天涯)로 감독 데뷔했으나, 흥행 성적은 평범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영화계에 뛰어들려는 결심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후 '추녀자'(追女仔, 1981), '귀마지다성'(鬼馬智多星, 1981), '최가박당'(最佳拍檔) 시리즈(1982~1989), '아애야래향'(我愛夜來香, 1983), '횡재삼천만'(橫財三千萬, 1987) 등 수많은 흥행작에 출연하고, 제작 및 기획자로도 활약했다. 1983년, 그는 '최가박당'에서의 연기로 제2회 홍콩 영화 금상장(香港電影金像獎)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홍금보 또한 '제방소수'(提防小手)로 공동 수상하며, 홍콩 영화 금상장 역사상 드문 공동 수상자가 되었다. 1991년, 신예성 영화사가 해체되면서 그는 영화계를 떠났다. 그러나 2000년 영화 '대영가'(大贏家)에서 카메오로 복귀했으며, 중국 본토 드라마 '제공전기'(濟公傳奇)에서 주연을 맡았다. 2001년에는 황점(黃霑), 나가영(羅家英)과 함께 삭발한 모습으로 아시아 TV(亞洲電視)의 토크쇼 '세 명의 대머리 남자'(三個光頭佬)를 진행했다. - 향항전영도연대전(香港電影導演大全)에서 발췌 및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