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44년 중국 출생. 그의 아버지 유잠(劉湛)은 임세영(林世荣)의 제자, 즉 황비홍(黃飛鴻)의 재전제자(再傳弟子)이며 유가량(劉家良)은 그의 형이다. 가족은 1949년 홍콩으로 이주했으며, 유가영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형에게 무술을 배웠다. 1963년, 형 유가량의 소개로 영화계에 입문하여 무술 연기를 시작했으며, 1966년부터 무술감독으로 활동했다. 1972년에는 한국 감독 정창화(鄭昌和)와 협력한 영화 '천하제일권'(天下第一拳)이 서구 시장에 진출하는 선구적 작품이 되면서 유가영 역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밀령'(密令, 1974), '충천포'(沖天炮, 1974), '독비권왕대파혈적자'(獨臂拳王大破血滴子, 1976), '호학쌍형'(虎鶴雙形, 1976), '독비도대전독비도'(獨臂刀大戰獨臂刀, 1977)에서 주연 또는 조연을 맡으며 입지를 다졌다. 1977년, '공부소자'(功夫小子)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고, 이듬해에는 '귀마공부'(鬼馬功夫)를 감독했다. 같은 해, 맥가(麥嘉)와 홍금보(洪金寶)와 함께 가보영화사(嘉寶影業公司)를 공동 설립했으며, 첫 작품은 맥가가 감독한 '노호전계'(老虎田雞)였다. 1979년에는 자신이 감독한 '박명단도탈명창'(搏命單刀奪命槍)을 제작했으며, 두 작품 모두 홍금보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가보영화사가 해체된 후, 유가영은 형 유가량과 함께 유씨형제영화사(劉氏兄弟影業公司)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일담이력삼공부'(一膽二力三功夫, 1979)와 '파계대사'(破戒大師, 1980)를 감독했다. 또한, 신예성(新藝城)에서 제작한 영화 '소생파파'(小生怕怕, 1982)와 '소야위위'(少爺威威, 1983) 두 편의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다. 특히 '소생파파'는 1,400만 홍콩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그를 ‘천만 감독’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그가 감독한 영화 중 1,000만 홍콩 달러를 넘긴 작품으로는 '용지가족'(龍之家族, 1988)과 홍금보, 맥가와 다시 함께한 '수호비룡'(瘦虎肥龍, 1990)이 있다. 1992년, 원상인(袁祥仁)·원신의(袁信義)와 함께 '황비홍'(黃飛鴻, 1991)으로 홍콩 영화 금상장(香港電影金像獎) 최우수 액션 감독상을 수상했다. 1994년,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첩영추흉'(叠影追兇) 이후 영화·TV 활동을 줄였으며, 홍금보가 감독한 '황비홍지서역웅사'(黃飛鴻之西域雄獅, 1997)에서 제2 촬영팀 감독을 맡았다. 또한, 유가량이 감독한 '취마류'(醉馬騮, 2003)와, 액션 감독을 맡았던 '칠검'(七劍, 2005)에서 협력했으며, 몇 편의 영화와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유영건(劉永健)의 아버지. - 향항전영도연대전(香港電影導演大全)에서 발췌 및 편집 |